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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칠 close-up>“여수 조발도(早發島) 거북이야기”

윤문칠 논설주간 | 기사입력 2021/06/22 [14:41]

<윤문칠 close-up>“여수 조발도(早發島) 거북이야기”

윤문칠 논설주간 | 입력 : 2021/06/22 [14:41]

▲ 윤문칠 전)전남도 교육의원     ©

구국의 성지 여수’(麗水)에는 농가12월령가처럼 12거북이형상이 천혜의 명산인 명당자리에 앉아 주변 바닷물을 마시면서 땅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상생의 거북이가 재물과 밀접한 관계를 있기 때문에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화양면 이목 벌가 마을 둔병 섬을 지나 적금도 가는 길목인 작은 섬은 아침 해가 일찍 떠서 섬 전체를 밝게 비추어 준다고 해서 일찍 조()자 쏠발()자를 써 조발도(早發島)라 한다. 이곳은 지형이 말 등처럼 생겨 평지도 없고 높은 산도 없는 모두 경사지로 되어 있어 이웃주민들은 삐뚤이 동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웃 작은 섬들은 적금도 쪽 바로 옆에 위치한 조발도에서 해가 뜨는 일출 때에는 붉어오는 바닷물과 적금도 쪽으로 해가 떨어지는 낙조 시에는 섬에 걸린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6월 보름날 조발도마을에 거주한 홍씨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선박이 난파되어 의식을 잃고 있을 때 순간 큰 거북이가 쏜살같이 와서 홍 선장을 등에 태우고 모래밭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선장 목에는 진주가 걸어져 있고 거북이는 멀리 헤엄쳐 사라질 때 저녁노을에 빛을 받아 진주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는 거북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에서 오른쪽 보이는 무인도 섬은 새(솔개)가 날아가는 모양처럼 황토색의 섬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솔개섬이라 불리고 있다. 그 주변 웃 닭 섬까지 바다 밑 해저에 널려져 있는 산호초사이에 명주실꾸리가 한 꾸리쯤 들어간다는 등선 굴에 살고 있는 금 거북이가 홍 선장을 등에 태워 모래밭에 버리고 갔다고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믿고 있다.

 

화정면 여자만 초입의 관문으로 고흥반도와 불과 2.5km로 적금도(積金島), 낭도(狼島)가 인접해 있는 화양반도의 조발도(早發島)와 둔병도(屯兵島). 사도(沙島), 추도(鰍島)로 연결된 조발도에는 이순신 장군이 세웠다는 봉화대가 적금도 요막 산에 지금도 남아 있다. 인구 감소로 정기여객선이 폐지되면서 화양면과 가까워 이목리 벌가 포구에서 도선이 운항하였다. 그런데 여수시와 고흥군을 연결하는 국도77호선인 4개 섬(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을 연결한 총 연장 17km구간이 2차선으로 착공(‘11,12)하여 개통(‘20.2)되고 여수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조발도에 도착하는 가까운 이웃의 섬이 되었다.

 

섬 내에는 경운기도 없는 원시 농법으로 소규모 생산체계를 유지하는 참 소박한 섬 에서 반농반어의 전형적인 마을이다.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들과 산에는 나물이 지천이고 주요 농작물은 맥주보리와 고구마 그리고 황금(약초·마늘·무 등이 부수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특히 연근 바다주변에는 좁디좁은 골목길과 경사진 길 사이에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섬이다. 인근 둔병 섬은 옛 문헌에는 두음방도라 하였다. 연못의 사투리인 둔병이라는 여수사투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형상이 큰 연못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 앞에는 둔병처럼 해안이 무한정 길어서 둔병이라 불렸는데 넓게 펼치진 바다와 산마루에서의 절경은 천혜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후 조발도 사람들은 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서 만물을 넣는다고도 하여 동내위에 있는 당집에 위패를 모시고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며 반드시 은혜를 갚기 위하여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날 제미를 뽐아 당첨이 되면 한 해 동안 금칙을 지켜 육 고기를 먹지 않고, 초상이나 결혼식, 불이 난 곳, 싸우는 곳에는 가지 않고 동네일이나 개인사에 참견도 해서는 안 되는 풍습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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